이제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것은 한 가지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제 각각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교사는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잠재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지식보다는 행동양식이 더 많이 정립되는 초등학교 시기에 교사가 보여주는 잠재적인 모습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살아가는 방법'은 많은 교사들이 보여주는 행동양식 중 하나입니다. 학생들은 저를 포함한 여러 선생님들의 교육철학이 깃든 행동양식을 경험하면서, 타인의 삶을 통한 학생 스스로 자신만의 행동양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저와 보내는 1년 동안 학생들에게 제가 생각하는 '삶의 양식'은 '행복한 민주시민'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행복을 만들어가기 위한 '민주시민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최대는  '인간관계'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에서는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라고 합니다.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인간'이라고 합니다. 돈과 재물 따위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인용).  구석기시대부터 집단 군락을 이루고 살아왔던 그 기억이 몸에서 계속 반응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현대 문명에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금전과 재물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넘어선, 그리고 빈번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결국 다른 사람과의 어울림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어울림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부모와의 관계, 자식과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조직 간의 관계, 사회 속의 관계 등등 참 많습니다만, 초등학교 시절에 겪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인 '학급'에서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가족과의 관계'는 아동의 발달에 대부분 영향을 미치지만 부모의 행동양식이 꼭 사회에서 바람직한 행동양식은 아닐 수 있습니다. (아동학대는 친부모가 80% 이상 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학교는 아동이 가족 이외의 타인의 행동양식을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창구인 셈입니다. 또, 선생님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에서의 바람직한 행동양식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 앞에서는 고집을 부리면 다 들어줄지는 몰라도 학교와 사회에서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곳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는 모두의 행복을 위한 정의를 생각하고, 이를 지키는 사람이 많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흔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논하는 공리주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맹점이 있습니다. 소수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대화를 통해 조금씩 양보하며 타협을 한다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은 규모의 학급에서부터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를 위한 토론과 타협, 양보가 있어야 이들이 나가게 되는 사회에서 서로의 간극이 줄어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한 아동이 많은 고통과 학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학교와 사회에서는 그런 고통을 감싸주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선생님뿐만 아니라 주위의 같은 친구들도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귀천(貴賤)이 따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청동기 시대 이후로 사람 간에 계급을 나누기 시작했고, 역사는 그런 계급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였지만 아직까지도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에 의한, 권력에 의한 신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 다문화 가정, 탈북자 등 생김새와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배척하고 차별합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차별을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이념 아래, 서로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공동체, 사회의 우산 아래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이런 마음을 품기를 바랍니다.


  나를 세우고, 그 위에서 자유와 책임을 같이 즐기는 사람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진짜 '민주시민'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주시민'을 정의하는 것은 이미 여러 학자들이나 많은 시민분들이 정의하고 있으며, 그런 방향에서 초점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학급을 운영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저는, 민주시민이라면 갖추어야 할 자세를 아래와 같이 초점을 두고자 합니다.

  첫째,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나 다움'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저는 이러한 '자기 세우기'가 특히 한국의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흔히 회자되는 한국인의 특성에는 '선택 장애'가 있습니다. 두 가지 혹은 여러 가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선택의 결과가 미칠 파장이 클 경우에는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선택 장애'는 "어떤 라면을 먹어야 할까?"와 같이 굉장히 사소한 것에 있어서도 한 번에 선택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학습 방식은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을 듣고 암기하는 일제식 강의가 대다수입니다. 또 부모님이 시키는 것만 이리저리 다니며 공부합니다. 운동도 시키는 것만 합니다. 선택을 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겁니다. 부모님이, 선생님이 하는 방법이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며 그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끌고 갑니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심지어 성격마저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자기 스스로를 제대로 알 수나 있을까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성격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내가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을 스스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사회에서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과 체험들을 통해 '나 다움'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이를 만끽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나 자신을 바로 세운 위에 자유를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세운 사람은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방종이 아닌 자유를 제대로 누리는 사람은 열정이 넘칩니다. 자유를 통해 인간은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초등학생이기에 나 자신을 세우는 일 조차 어려울 수 있지만, 조금씩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심리적, 감성적인 자유를 만끽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자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멋대로 하는 게 아니라(그건 방종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하고 싶은 건 하지 않고, 하기 싫은 건 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자유는 자신이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야 자유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앞서 이야기한 것과 유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절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책임과 의무'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개념까지 포함합니다. 자기 절제를 잘 하여 자신을 바로 세운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정말 때로는 내가 맡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서로 협력하는 자세를 가지지 않는다면, 사회는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결국,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도 무너지게 됩니다.


  행위예술가인 '홍승희'씨는 위안부 할머니께서 일본대사관에서 열고 있는 '수요집회'에서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매주 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한민국 효녀 연합'이라는 피켓을 들고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구호를 '어버이연합'에게 상냥하게 웃으며 보여주었습니다. 불합리한 것에 분연히 나서서 이를 표현하고, 반대하는 사람 앞에서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이 분과, 그의 언니가 춘천에서 운영하는 '인문학 카페'의 매일 바뀌는 입간판을 읽어 보면, 이 자매는 '행복한 민주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위에 적어 내린 저의 교육철학이 '확정'되었다고 도장을 찍지 않습니다. 몇 년을 생각만 하다가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은, 계속해서 생각이 쌓이고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적어 놓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바뀌거나 첨가되거나 빠질 것입니다. 학생들과 부딪혀 지낼  때마다 항상 위의 내용들을 생각하면서 계속 고민하고, 저만의 '즐겁고, 행복하고, 의미 있는' 교육을 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은 새로운 글을 통해 표현될 것입니다.  2015년 얼떨결에 전담을 맡게 되며 한 템포 쉬었지만, 2016년에 다시 만날 제자들과 함께하길 바라며 마칩니다.


정아울 교육을 세우다 - 1판(2016).